드라마 속 비주류 인물 서사의 부상과 의미: 주변에서 중심으로, 이야기의 권력 이동
최근 몇 년간의 드라마 흐름을 보면 분명한 변화가 감지된다. 중심 인물의 조건이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능력 있는 남성 주인공’이나 ‘고난을 극복하는 여성 주인공’이 드라마를 이끌어갔다면, 이제는 경계에 선 인물들, 주류 사회 밖에 머물던 인물들이 점차 이야기의 중심에 서고 있다. 이들은 비장애인도 아니고, 비(非)계급 중심도 아니며, 때로는 아예 사회가 정의조차 하지 않았던 존재들이다. 본 글에서는 이와 같은 ‘비주류 인물’ 서사의 부상 배경과 그 서사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경계인과 주변인의 중심화: 이야기의 시선이 옮겨지다
과거 드라마는 사회의 주류 시선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았다. 주인공은 사회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거나, 거기에 도달하려는 인물이었다. 반면 최근의 드라마는 ‘경계에 있는 인물들’을 주목한다. 이들은 주변에 머물던 인물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의 맹점을 지적하는 존재로 등장한다. 예를 들어, Netflix의 《마스크걸》(2023)은 외모 콤플렉스를 가진 평범한 회사원이 밤에는 가면을 쓰고 BJ로 활동하다,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이 드라마는 외모지상주의, 성적 대상화, 사회적 소외 등 복합적인 문제를 다룬다. 주인공이 가진 욕망과 상처는 결코 일방적이지 않으며, 시청자에게 도덕적 판단을 강요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인물을 ‘응시’하게 만들며, 그 감정의 동요 자체가 이 서사의 핵심이다. 또한 일본 드라마 《공중그네》(WOWOW, 2009)는 정신과 의사와 그를 찾는 환자들의 이야기로, 사회의 이면에 가려진 고통을 지닌 사람들의 서사를 다룬다. 일반적인 드라마라면 ‘치유’나 ‘극복’의 메시지를 중심에 둘 것이지만, 이 드라마는 끝까지 ‘이해받지 못함’의 감각을 유지한다. 이는 오히려 현실을 더욱 진하게 반영한다. 이처럼 비주류 인물 서사는 시청자에게 익숙한 영웅 서사에서 벗어나, 감정의 결핍과 외면된 삶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감동’보다 ‘성찰’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드라마가 지향하는 정서적 방향성과 맞닿아 있다.
비가시성의 해체: 보이지 않던 인물에게 이름을 부여하다
드라마 속 비주류 인물들은 오랫동안 주변에서 존재만 해왔다. 대개는 조연이었고, 배경이었고, 때로는 웃음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들에게 ‘이름’이 부여되고, ‘서사’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히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중심축 자체가 재편되고 있다는 의미다. 웨이브 오리지널 《피타는 연애》(2022)는 이성애 중심의 연애 리얼리티 포맷을 차용했지만, 실제로는 성소수자 커플을 포함해 다양한 연애 형태를 조명한다. 기존 드라마나 예능이 비주류 성 정체성을 ‘특별함’으로만 소비했다면, 이 드라마는 평범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이들을 더 가깝게 느끼게 만든다. 시청자는 ‘다르다’는 이질감보다 ‘비슷하다’는 공감 속에서 비주류 인물을 받아들인다. 또한 Disney+의 《너와 나의 경찰수업》(2022)은 경찰대학을 배경으로 남학생 간의 미묘한 감정선을 중심에 둔다. 이 드라마는 퀴어 코드와 권위적 시스템을 교차시켜, ‘정체성’과 ‘제도’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진정성 있게 풀어낸다. 과거였다면 이 인물들은 서사의 뒤편에 있거나, 이야기의 장애물로만 기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감정의 주체로, 결정을 내리는 인물로 자리 잡는다. 비주류 인물에게 서사를 부여하는 것은 그들을 ‘인물’로 대우한다는 의미다. 이는 곧 드라마가 지닌 세계관 자체가 확장되고 있다는 뜻이며, 다양한 삶의 방식과 존재가 이야기로 포용되고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감정의 다층화: 비주류 인물이 전하는 복합적 감정선
비주류 인물들이 중심이 되면서 드라마의 감정선도 더 복합적이고 세밀해졌다. 과거에는 감정이 선명했다. 사랑이면 사랑, 분노면 분노였다. 그러나 지금은 한 감정 안에 여러 결이 섞여 있다. 응원과 불편함, 연민과 판단이 동시에 들기도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런 ‘감정의 복잡성’이 이야기를 더욱 현실적으로 만든다. Netflix의 《소년시절의 너》(중국, 2019)는 가정폭력과 학교 폭력,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청소년들을 그리면서도, 그 감정의 윤리를 단순하게 처리하지 않는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또 다른 폭력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복잡한 감정 구조는 기존의 주류 인물이 보여주던 일직선 감정과 다르며, 시청자에게 쉽지 않은 감정적 선택을 요구한다. 또 다른 예로, 일본 드라마 《Woman》(NTV, 2013)은 미혼모이자 비정규직 노동자인 주인공이 아이를 키우기 위해 살아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녀의 삶은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불편하고 안타깝다. 시청자는 그녀를 무조건 응원하기보다는,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감정은 단선적이지 않고, 파도처럼 복잡하게 밀려온다. 감정의 다층화는 단순히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다. 시청자의 감정적 노동을 요구하며, 드라마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어낸다. 이는 비주류 인물이 지닌 현실성과 서사적 밀도가 결합될 때 가능한 감정선이며, 오늘날 드라마가 추구하는 깊은 몰입의 원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