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드라마의 재현 방식과 허구의 경계: 픽션이 사실을 만나 진실이 될 때

역사 드라마는 언제나 두 개의 질문 위에 서 있다. “사실을 얼마나 정확히 재현할 것인가”와 “어디까지 허구를 허용할 것인가.” 이 장르는 역사적 사실이라는 강력한 기반 위에서 출발하지만, 드라마라는 형식 자체가 감정과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늘 균형의 곡예를 해야 한다. 특히 요즘처럼 역사 왜곡에 대한 대중의 경계가 높아진 시대에는, 역사 드라마의 사실성은 단지 ‘참고 요소’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의 정당성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번 글에서는 현대의 역사 드라마들이 어떤 방식으로 재현과 허구를 조율하며, 감정과 진실을 함께 설계하는지 분석한다.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 배경과 판타지적 요소를 나란히 배치한 일러스트

사실 재현의 기술: 디테일은 어떻게 신뢰를 만드는가

역사 드라마에서 ‘재현’은 단순히 배경이나 의상을 고증하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당대의 사회 구조, 언어 표현, 계급 관계, 가치관까지 포함하는 총체적 설계**다. 시청자가 특정 시대를 믿을 수 있도록 만드는 모든 요소가 바로 ‘재현’에 포함된다. 넷플릭스의 《더 킹: 영원의 군주》(2020)는 평행 세계와 현대사를 넘나드는 판타지지만, 대한제국이라는 가상의 왕조 설정을 통해 과거 정치 구조와 왕권 시스템을 모사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실존 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언어와 군주의 위계질서가 매우 사실적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시청자는 설정이 허구임을 인지하면서도, 그 디테일한 재현성 때문에 현실성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JTBC의 《설강화》(2021)는 1987년 민주화운동기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를 다루었으나, 당시의 안기부 및 학생운동 세력에 대한 설정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사실 재현이 허구의 감정에 가려지면, 오히려 대중은 드라마가 정치적 메시지를 왜곡한다고 느끼게 된다. 이는 '시대의 상처'를 배경으로 차용하면서, 그 시대의 맥락을 소홀히 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역사 드라마에서 디테일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시청자의 신뢰를 얻기 위한 ‘증거’이자 ‘정당성’이다. 제작자는 상상할 수 있지만, 그 상상은 반드시 시대의 틀 안에서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

감정과 서사의 허구: 허구는 왜 필요한가

그렇다면 반대로, 역사 드라마에서 ‘허구’는 어디까지 허용되어야 할까? 완벽한 고증만으로는 드라마가 되기 어렵다. 시청자는 감정을 요구하고, 인물의 서사를 따라야 한다. 따라서 역사 드라마는 반드시 허구의 층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KBS2의 《태종 이방원》(2021)은 조선 개국 초기의 정치 갈등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역사적 사건은 거의 그대로 재현되지만, 인물의 대사, 감정 변화, 가족 간의 갈등 등은 대체로 허구적이다. 이 드라마는 ‘사건의 사실성’은 유지하면서도, ‘사람의 감정선’은 드라마적으로 구성하여 몰입을 유도한다. 미국 HBO의 《John Adams》(2008)는 미국 독립전쟁과 초대 대통령들의 정치 갈등을 다루지만, 인물 간의 사적 대화나 내면 묘사는 대부분 상상에 기반한다. 이때 허구는 단지 서사적 장치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 관통하지 못한 인간의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통로**로 기능한다. ‘허구는 감정을 위한 장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너무 고증에 집착한 드라마는 감정적으로 건조해질 위험이 있다. 중요한 것은 허구의 범위가 아니라, 그 허구가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느냐이다.

허구와 사실의 충돌: 경계를 지키는 윤리

하지만 모든 허구가 정당화되지는 않는다. 특히 특정한 역사적 사건이나 실존 인물을 다룰 때는, 그 인물의 생애나 사건이 갖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윤리적 고려’가 필수적이다. 그렇지 않으면, 드라마는 허구의 자유를 주장하다 오히려 진실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SBS의 《해치》(2019)는 영조 즉위 전후의 궁중 정치를 중심으로 펼쳐지며, 정치 권모술수 속에 휘말린 왕세제의 고뇌를 묘사한다. 이 작품은 허구의 캐릭터도 등장하지만, 주요 정치 흐름과 개혁 법안 등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여 전개된다. 허구가 존재하되, 그 허구가 전체 역사의 방향을 바꾸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국 드라마 《연희공략》(2018)은 청나라 건륭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실제 인물들의 성격과 사건을 지나치게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실존 황후를 지나치게 악역화하거나, 특정 계층을 영웅화하는 설정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할 수 있으며, 타문화적 수용에서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우려는 자주 제기된다. 고증이 허술한 시대극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시청자들이 역사 인식이 높고, SNS 등을 통해 비평을 활발히 하기 때문에, 제작진은 반드시 역사와 허구 사이의 윤리적 경계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픽션이라 해도, 역사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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