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드라마의 클리셰와 새로움: 익숙함 속에서 찾는 감정의 진화

로맨스 드라마는 언제나 대중적 사랑을 받아온 장르다.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중심에 두고, 갈등과 화해, 오해와 고백이라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 전개되는 이 장르는 인간 감정의 가장 본질적인 영역을 다룬다. 그러나 오랜 시간 이어져온 만큼, 로맨스 드라마는 수많은 클리셰(cliché)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때로는 감정의 진부함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본 글에서는 로맨스 드라마 속 대표적인 클리셰들을 정리하고, 최근 등장한 새로움의 흐름과 변화 양상을 통해 이 장르가 어떻게 다시 진화하고 있는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네 개의 장면이 하나의 콜라주로 어우러지며, 왼쪽 위는 우산 아래 고백 장면, 오른쪽 위는 공항 엔딩, 왼쪽 아래는 삼각관계의 긴장감, 오른쪽 아래는 일상 속 은은한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사랑의 공식, 익숙함이라는 안정감: 대표적 클리셰의 서사 구조

로맨스 드라마에는 고정된 구조가 존재한다. 서로 다른 환경의 남녀가 처음에는 갈등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끌리고, 결정적 위기를 겪은 후 사랑을 확인하게 되는 전형적인 플롯이다. 이 안에는 수많은 클리셰가 있다. ‘우연한 만남’, ‘빗속 고백’, ‘질투를 유발하는 제3자’, ‘기억상실’, ‘갑작스러운 사고’, ‘공항 엔딩’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반복되어 왔지만, 여전히 시청자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준다. 가장 대표적인 클리셰는 ‘티격태격 관계에서 시작된 사랑’이다. <시크릿 가든>(2010)이나 <도깨비>(2016), <사내맞선>(2022) 같은 작품에서 두 주인공은 처음에는 서로에게 불쾌감을 느끼지만, 결국 가장 가까운 존재가 된다. 이 과정은 ‘갈등 → 점진적 이해 → 감정의 전환’이라는 감정 곡선을 따르며, 시청자는 이 감정선에 감정이입하게 된다. 또한 ‘삼각관계’는 로맨스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이 구조는 주인공의 감정을 극단화하고, 시청자에게 ‘선택의 긴장’을 부여한다. 사랑받지 못하는 제3자의 존재는 안타까움과 함께 주인공 커플의 감정을 강조하는 기능을 하며, 드라마의 감정 밀도를 높이는 역할을 한다. ‘기억상실’이나 ‘신분 차이’ 역시 오랫동안 사용된 클리셰다. 이는 극적인 갈등을 조성하며, 사랑의 순수성이나 운명성을 강조하는 데 효과적이다. <겨울연가>(2002)의 경우 기억을 상실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사랑이 기억을 초월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감성적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클리셰들은 자칫 식상할 수 있지만, 오히려 시청자에게 ‘기대감’을 심어주는 장치로 기능한다. 마치 예정된 코스를 따라가듯, 우리는 주인공들이 서로에게 다가가기를 기다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감정을 축적해간다. 결국 클리셰란, 진부하지만 익숙한 감정의 리듬이자, 시청자와 드라마 사이에 맺어진 감정적 약속이기도 하다.

로맨스의 재구성: 클리셰를 비틀고, 경계를 넓히다

최근 로맨스 드라마는 전통적인 서사 구조에서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클리셰를 없애는 차원을 넘어서, 기존의 틀을 비틀고 재구성하거나, 전혀 다른 배경과 구조 속에 로맨스를 녹여내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시청자의 감정 경험을 새롭게 구성하며, 로맨스 장르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 <멜로가 체질>(JTBC, 2019)은 로맨스를 중심으로 하면서도, 인물들의 삶과 우정, 일, 자아 탐색을 중심축에 둔다. 이 드라마는 ‘사랑=인생의 전부’라는 전통적 로맨스의 전제를 해체하고, ‘사랑은 인생의 일부일 뿐’이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이 안에서 로맨스는 다른 관계 속 감정들과 동등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며, 시청자는 보다 입체적인 감정선을 경험하게 된다. 또한 <나의 해방일지>(JTBC, 2022)는 극적인 사건이나 오해, 삼각관계 없이도 깊은 로맨스를 만들어낸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말하지 않는 감정’과 ‘생활 속 사랑’이라는 주제를 통해, 감정이 폭발하지 않아도 충분히 사랑을 전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과장된 클리셰를 지양하고, 현실적인 감정선과 미묘한 변화에 집중함으로써 로맨스 장르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로맨스 장르에서 ‘여성 주도형 서사’가 증가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39>(JTBC, 2022), <그 해 우리는>(SBS, 2021~2022) 등의 작품에서는 여성 캐릭터가 자신의 감정과 인생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가며, 로맨스 역시 그 결정의 연장선에 놓인다. 이는 사랑이 ‘구원’이 아닌 ‘선택’으로 다뤄지는 방식으로, 현대적 감수성과의 접점을 마련해 준다. 기존 클리셰를 비트는 또 다른 방식은 장르 간 결합이다. 로맨스와 미스터리, 판타지, 스릴러 등의 장르를 혼합함으로써, 로맨스 자체의 감정선이 보다 극대화된다. <지금, 헤어지는 중입니다>(SBS, 2021)는 패션 업계를 배경으로 커리어와 사랑을 병행하는 현실적 로맨스를 다뤘고, <알고있지만,>(JTBC, 2021)은 애매하고 불분명한 관계 속에서 감정의 방향성을 탐색하며 ‘애정 표현’의 방식에 대한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이처럼 로맨스 드라마는 여전히 감정의 핵심을 다루면서도, 그 표현 방식과 이야기의 틀에서는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는 시청자들이 단순한 사랑 이야기를 넘어, 복합적인 감정과 관계를 경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결과다.

감정의 본질로 돌아가는 흐름: 진심이 중요한 시대

최근 로맨스 드라마의 흐름은 단순한 극적 사건보다 ‘감정의 진정성’에 무게를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는 화려한 반전이나 설정보다, 인물의 내면과 감정의 흐름에 집중함으로써 더 깊은 몰입과 공감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사랑의 불시착>(tvN, 2019~2020)은 남북이라는 특별한 설정에도 불구하고, 인물들이 주고받는 감정의 디테일에 집중함으로써 진정한 로맨스 드라마로 인정받았다. 특히 윤세리와 리정혁이 서로를 지켜보는 눈빛, 말 대신 행동으로 표현되는 감정들은 진부한 고백보다 더 강한 설득력을 가졌다. 이 작품은 설정보다 감정의 밀도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입증한 사례다. 또한 <사이코지만 괜찮아>(tvN, 2020)는 심리적으로 결핍된 두 사람이 서로를 통해 성장하는 이야기로, 사랑의 감정을 단순히 달콤한 것으로 묘사하지 않고, 치유와 수용의 과정으로 그려낸다. 이는 사랑이 개인의 내면을 확장시키는 도구임을 보여주며, 단순한 로맨스를 넘는 심리 드라마로도 기능한다. 이와 같은 드라마들은 “정말 저 두 사람이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는 반응을 이끌어낸다. 대사의 양보다 무게, 장면의 수보다 감정의 깊이가 중요해진 시대. 시청자는 더 이상 뻔한 고백이나 낭만적인 배경에만 감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한 위로, 거절을 존중하는 태도, 평범한 일상 속의 따뜻한 배려가 더 큰 감정의 파동을 만든다. 로맨스 드라마의 미래는 결국 ‘감정의 본질’로 돌아가는 흐름에 있다. 그리고 이 흐름은 클리셰를 완전히 버리기보다는, 그것을 재해석하고 진화시키며 새로운 감정을 덧입히는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익숙함 속에서 낯선 감정을 발견하고, 뻔한 이야기 속에서 진심을 다시 만나는 것. 그것이 바로 로맨스 드라마가 아직도 유효한 이유다.

🔥Hot:

시그널 리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 속 정의의 의미와 책임의 무게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리얼리티와 서사 기법: 진실과 허구 사이에서 태어난 공감

2025년 달라지는 국민연금 제도 핵심 요약 – 꼭 알아야 할 변경사항 정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