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널 리뷰,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무전기 속 정의의 의미와 책임의 무게
tvN 드라마 ‘시그널’은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연결되어 미제 사건을 해결하는 독특한 설정을 통해,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깊은 화두를 던지는 수작입니다. 단순한 수사극을 넘어서 인간의 선택, 책임, 그리고 구조적 문제까지 조명하며 높은 몰입도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본 리뷰에서는 시그널이 전하는 사회적 메시지와 심리적 울림을 중심으로 풀어봅니다.
무전기 너머로 전해진 정의, 시간은 연결될 수 있는가
드라마 ‘시그널’은 2016년 tvN에서 방영된 이후, 한국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단순히 미스터리 혹은 스릴러로 분류되기엔 아까운 이 드라마는 ‘시간’이라는 물리적 장벽을 초월해 과거와 현재의 형사가 무전기를 통해 소통한다는 기묘한 설정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설정이 단순한 판타지를 넘어서 사회적 고발과 인간 심리에 대한 깊은 통찰로 이어지며, 시청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주인공 박해영(이제훈 분)은 현재의 프로파일러로, 과거의 형사 이재한(조진웅 분)과 무전기를 통해 연결된다. 둘은 15년 이상 지나버린 미제 사건들을 해결해나가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진실과 마주한다. 이들의 공조는 시간의 경계를 넘어선 ‘연결’이자, 정의를 향한 공통된 집념의 결과물이다. 드라마의 시작은 아주 현실적이다. 박해영은 소년 시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죽은 친구의 사건을 계기로 경찰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조직은 사건의 진실보다 외형적인 성과를 중시하고, 고위 간부들의 이익을 위해 사건은 은폐된다. 이 안에서 박해영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고, 그 와중에 과거의 무전기를 발견하게 된다. 이재한은 과거의 형사지만, 그의 신념은 시대를 앞선다. 그는 권력자와 유착하지 않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수사를 이어간다. 하지만 그 정직함은 오히려 그를 위태롭게 만들고, 결국 그는 실종되며 행방불명된 인물로 현재에 남는다. 두 사람의 시간은 멀리 떨어져 있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정의’는 정확히 닿아 있다. ‘시그널’은 단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만을 그리지 않는다. 드라마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하지 않는 진실과, 구조적으로 반복되는 부조리를 직시하게 한다. 그것은 곧 “정의는 과연 실현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물음은 박해영과 이재한, 그리고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시청자에게도 동일하게 던져진다. 드라마는 ‘과거의 잘못을 현재가 고칠 수 있을까’라는 희망을 품고 있지만, 동시에 그 과정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희생이 따르는지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는다. 이 균형 잡힌 시선이 ‘시그널’을 단지 흥미로운 설정의 드라마가 아닌, 사회적 의미와 심리적 울림을 갖춘 걸작으로 만든다.
정의, 그 이름으로 감당해야 할 책임과 상처
‘시그널’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히 사건 해결의 쾌감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 드라마는 ‘정의’라는 가치가 얼마나 복잡하고, 무거운 책임을 수반하는지를 정면으로 그려낸다. 각 에피소드가 다루는 사건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경우가 많으며, 한국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반영하고 있다. 여성 연쇄 살인사건, 어린이 유괴 사건, 부유층의 범죄 은폐 등. 드라마는 이런 사건들을 통해 피해자 중심의 서사를 견지하고, 가해자 처벌보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에 집중한다. 이것이 시그널의 진정한 힘이다. 단지 범인을 잡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배후의 사회 구조와 무관심, 권력의 유착 관계를 드러내며 근본적 문제를 환기시킨다. 특히, 이재한 형사의 서사는 많은 시청자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그는 정의를 향해 곧은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은 결국 그를 희생시킨다. 그의 실종은 단순한 ‘사라짐’이 아니라, ‘정의가 통하지 않는 사회에 대한 절망’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 절망 속에서도, 무전기를 통해 박해영과 소통하며 그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박해영 역시 성장한다. 처음에는 개인적인 복수와 억울함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수사를 시작했지만, 점차 그는 ‘한 명의 형사’로서 공동체와 정의에 대한 책임을 자각하게 된다. 그에게 정의란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옳다고 느끼는 결과를 향한 책임’이라는 사실을 배워간다. 차수현(김혜수 분) 형사의 존재 역시 이 드라마의 감정적 중심축이다. 그녀는 현재와 과거, 감정과 이성을 조율하며, 두 남자 형사와 연결된 감정선을 통해 드라마의 인간적인 결을 완성한다. 이재한에 대한 미련, 박해영에 대한 신뢰, 그리고 자신이 목격한 수많은 피해자에 대한 연민. 이 모든 감정이 그녀를 움직이게 한다. ‘시그널’은 정의가 때론 완성되지 못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책임을 가볍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무겁게 만든다는 점을 역설한다. 우리는 결국 완벽한 정의를 실현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는 것. 이 드라마는 그것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도리’임을 조용히 전한다.
시간을 초월한 신념, 시그널이 남긴 질문
‘시그널’의 마지막은 열려 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되지 않았고, 모든 고통이 치유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있다. 정의를 향한 사람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그 신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재한과 박해영, 차수현이라는 세 인물은 그 증거다. 이 드라마는 시청자에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당신이라면, 정의를 위해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그리고 이 질문은 단지 극적인 상황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 선택에서도 반복된다. 눈감고 지나칠 것인가, 아니면 작은 불의를 외면하지 않을 것인가. ‘시그널’은 이 물음을 통해 드라마 바깥의 현실과 시청자를 연결한다. 또한 이 작품은 구조적 문제를 개인의 선의로만 해결할 수 없음을 직시하면서도, 그럼에도 개인의 용기와 책임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희망을 제시한다. 한 사람의 선택이 바꿀 수 있는 세상, 그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는 자세. 이것이 ‘시그널’이 마지막까지 놓지 않는 신념이다. 현실은 드라마처럼 극적이지 않다. 무전기를 통해 과거와 대화할 수도 없다. 그러나 ‘시그널’이 보여준 가치, 정의와 책임, 피해자에 대한 존중, 그리고 연대는 우리가 현실에서 실현할 수 있는 것들이다. 바로 그 점에서 이 드라마는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이며, 냉철하면서도 따뜻하다. 그래서 ‘시그널’은 시간이 흘러도 다시 떠오르게 되는 드라마다. 그것은 단지 잘 만든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여전히 묻고 있는 질문에 가장 정직하게 대답한 작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그널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