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권력을 다룬 정치 드라마의 현실성: 픽션 속에 감춰진 진짜 권력의 얼굴
정치 드라마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권력의 작동 원리를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는 장르다. 허구의 외피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서 전개되는 사건들은 현실과 닮아 있고, 때때로 현실보다 더 날카로운 진실을 들춰내곤 한다. 특히 법과 정치, 권력의 교차점에 있는 이야기들은 시청자로 하여금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사회적 문제의식을 환기시키게 만든다. 이 글에서는 국내외 정치 드라마 중 법과 권력을 동시에 다루는 작품들을 중심으로, 그들이 보여주는 현실성과 그 서사 구조의 설계 방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정치의 리얼리즘: 권력은 어떻게 정당성을 가장하는가
정치 드라마에서 현실성을 부여하는 첫 번째 요소는 '권력의 작동 방식'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묘사하느냐다. 단순히 국회의사당이나 청와대를 무대로 등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로비, 인사, 언론 통제, 법 해석 등의 과정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재현하는지가 관건이다. tvN의 《디 엠파이어: 법의 제국》(2022)은 법조계 명문가를 중심으로 권력과 사법이 어떻게 맞물리는지를 묘사한다. 이 드라마는 판사, 검사, 대형 로펌, 재벌가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정교하게 설계하며, 실제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권력형 비리와 그 은폐 구조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특히 가족 간에도 권력을 매개로 관계가 형성되는 설정은 매우 현실적이며, ‘가정조차도 시스템의 일부’라는 날카로운 메시지를 던진다. 해외에서는 프랑스 드라마 《마담 프레지던트》(Baron Noir, 2016~2020)가 주목할 만하다. 이 작품은 대통령 선거를 둘러싼 당내 갈등, 스캔들 조작, 언론 플레이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며, 유럽 정계의 현실과 언뜻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긴장감을 전달한다. 특히 정치인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의 균열을 그려내는 데 매우 탁월하며, 권력이 어떻게 대중의 지지를 가장하여 정당성을 확보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정치 드라마가 단순한 음모론으로 흘러가지 않기 위해서는, 권력의 과정이 ‘가능성 있는 현실’로 구성되어야 한다. 시청자가 “이런 일이 실제로 있을 수 있겠다”고 느낄 때, 비로소 정치극의 리얼리즘은 설득력을 얻는다.
법과 윤리의 경계: 합법적인 불의의 구조
법은 정의를 구현하기 위한 도구지만, 정치 드라마에서는 법이 자주 ‘합법적인 불의’를 만드는 장치로 묘사된다. 이는 실제 정치 시스템이 법을 해석하고 운용하는 방식에 따라 얼마든지 권력의 편의에 맞게 왜곡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ENA의 《보이스 4》(2021)는 본래 범죄 수사물로 알려졌지만,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권력층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죄를 은폐하고, 진실을 관리하는 구조를 조명한다. 특히 고위 공직자가 자신에게 불리한 증거를 ‘절차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방식은, 실제 법적 기술과 권력 해석의 정치화를 교묘하게 반영한다. 영국 드라마 《State of Play》(BBC, 2003)는 기자가 국회의원의 비리와 살인 사건을 파헤치는 과정을 그린다. 법과 언론, 정치의 3축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이 드라마는, 법이 정의가 되기 위해서는 사회 시스템 전체가 투명해야 함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법의 해석 권한을 가진 이들이 사실상 진실을 통제하는 모습은, 법적 구조의 권력화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이러한 드라마들은 법을 ‘절대적인 선’으로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법이 권력자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며, 시청자에게 윤리와 법, 정의와 절차 사이의 미묘한 간극을 성찰하게 만든다. 현실의 법적 제도 역시 이런 권력적 해석의 여지를 갖고 있다는 점에서, 드라마는 단지 픽션이 아닌, 일종의 사회 교과서처럼 기능한다.
인물과 감정의 설계: 권력을 쥔 자들의 고독과 이중성
정치 드라마가 리얼리즘을 넘어서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인물의 설계’다. 권력을 쥔 인물들이 어떻게 내면적으로 균열되고, 어떤 선택을 통해 인간성을 잃거나 회복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은 정치극의 감정적 깊이를 결정한다. 넷플릭스의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는 권력의 정점에 오른 정치인이 어떻게 윤리와 감정을 차단하며 권력을 유지하려 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프랭크 언더우드와 클레어 언더우드는 표면적으로 완벽한 정치 커플이지만, 그 안에는 이기심, 공포, 불안이 끊임없이 얽혀 있다. 이들은 법과 제도를 이용할 줄 아는 동시에, 인간 관계를 계산으로만 다루며, 점차 감정이 소진되는 인물로 묘사된다. 한국 드라마 《보좌관》(JTBC, 2019)은 국회의원의 보좌관이 권력의 중심에 다가가면서 경험하는 딜레마를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주인공 장태준은, 정치의 세계에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해 원칙과 타협을 오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인물 구성은 정치 드라마의 서사를 단순한 시스템 비판이 아니라, 개인의 성장과 몰락이라는 감정의 서사로 확장시킨다. 결국 정치 드라마의 리얼리즘은 단지 제도를 묘사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 권력 속에 있는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어떤 감정의 파문을 만들어내는지를 설계할 때, 비로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인간 드라마로 완성된다.